조선조 군용 목궁에 대한 짧은 글 역사의 문을 두드리며

  [몇 년 전에 쓴 글인데, 아직 무식할 시절에 쓴 글이라 그런지 모자란 점이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의 글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에 이글루에 보관하기로 하였다. 글을 쓰고
나중에 알게된 사실 몇가지만 추가하였다.]



보통 목궁, 보다 자세하게 조선조의 군용 목궁(혹은 죽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면서 사거리가 50~100미터 밖에 안되는 나쁜 활이라고 하며 각궁에 비해 그나마 나은 점은 여름철이나 우천시에도 궁력이 약해지는 일 없이 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목궁 자체에 초점을 맞춘 심도있는 연구도 풍부하지 않은 점도 있겠습니다만, 전통 군사사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고 있는 일반인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2004년에 출판된 민승기 씨의 "조선의 무기와 갑옷"(도서출판 가람기획)에서 목궁을 소개하며 몇가지 실록 자료를 제시하였던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극증(李克增)이 또 아뢰기를,

 

“여러 포(浦)에 소장된 것은 다 목궁(木弓)인데, 목궁으로 쇠 화살[鐵箭]을 쏘면 반드시 수십 보()밖에 못 나가니, 그것으로 능히 적을 방어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군기시(軍器寺)의 각궁(角弓)을 나누어 주어 그것으로써 완급(緩急)에 대비하도록 하소서.”

 

- 성종실록 94권 9년 7월 16일 을해 첫번째 기사 -

 

 

 

 

병조 판서(兵曹判書) 고형산(高荊山)이 와서 죽궁(竹弓)을 바치고 아뢰기를,

“이 활의 세기가 목궁(木弓)보다 갑절이 되어, 살을 쏘면 80여 보(步)를 지날 수 있으니, 우선 써 보아서 쓸 만하면, 모든 군사가 지니는 활 및 군기시(軍器寺)의 활은 이것을 본떠서 만드는 것이 어떠합니까? 신이 변방에 오래 있으면서 보니, 각궁(角弓) 같으면 흙비[雨] 때에 쉽게 파손되나, 대[竹]는 흙비를 당할지라도 파손되지 않습니다. 신이 이미 시험하였으므로 와서 바칩니다.”

 

- 중종실록 25권 11년 5월 18일 무술 2번째 기사 -

 

 

  물론, 여기서 쓰인 철전이 정확히 무슨 철전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며 목/죽궁의 정확한 위력을 판단하기를 유보할 수도 있을 겁니다. 헌데 문맥상 여기서 말하는 철전은 실전에서 쓰이는 화살과 유사한 길이와 무게를 갖춘 철전을 의미할 확률이 높으므로 이런 반론은 구차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헌데 굳이 그런 구차한 반론이 아니더라도 과연 조선조의 군용 목궁/죽궁이 최대 사거리가 100미터도 안되는 장난감 활이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자료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국궁 연구가 정진명 씨가 해방전후에 활을 쏜 구사 분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수록해 놓은 "이야기 활 풍속사"(학민사, 2000)을 보면 옛 장단 지역에서는 활쏘기를 할 때 왕대로 만든 죽궁은 80미터 거리에서, 심줄을 붙인 죽궁은 85미터 거리에서 쐈다고 하며(143쪽) 한 때에는 각궁을 145미터 거리에서 쏠 때 죽궁을 120미터 거리에서 쐈다는(152쪽) 수원 연무정의 김병세 고문의 고증이 적혀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일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습사용인 활보다 더 강하기 마련인 군궁의 경우, 그동안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가해온 것보다 더 긴 사거리를 갖추었지 않았을까, 하고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남아있는 목궁 유물의 길이나 두께, 활의 너비를 보아도 이 것이 과연 50미터~100미터밖에 화살을 못쏘는 약한 활인지 하고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 의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조의 한 목궁 1) 은 길이가 약 150센티미터이며, 활채 중간의 너비가 5.1센티미터, 두께가 1.8센티미터에 달합니다. 같은 박물관 소장의 또 다른 목궁은 길이가 164센티미터, 활채 중간의 너비가 5.2센티미터에 두께가 1.7센티미터입니다. 두 유물 다 심줄이 부착되어 있고 심줄에 화피를 입혔거나 입힌 흔적이 있는데, 활채 뿐만이 아니라 활고자 또한 매우 두텁고 확연히 각진 것이 현대 한국의 국궁과는 한 눈에 구별이 될 정도입니다.

 

국내의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두 목궁도 길이가 각각 162센티미터, 156센티미터나 되며, 자세한 수치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활채의 두께나 고자의 두께, 각진 정도가 앞서 언급한 인류학 박물관의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3). 정묘, 병자호란을 겪은 문신 조익은 자신이 쓴 문집에 남긴 목궁 제원도 이러한 현존 유물들과 비견할 만합니다.(http://sinsigel.egloos.com/871512 참조)


길이가 약 2.5미터이고 너비가 8센티미터인 육군박물관 소장의 예궁이 박극환 궁장이 복원했을 때 세기가 270파운드 4)였고, 같은 궁장 분께서 예전에 복원 제작한 90센티미터 남짓한 마상용 목궁의 세기가 100파운드 이상 5)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무의 재질이나 결 등을 고려하더라도)앞서 언급한 네 목궁들은 그 중간에서 조금 못미치는 (140~150파운드 정도) 장력을 지닐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술한 실록의 기사에서처럼 100미터도 채 안되는 최대 사거리를 가졌다고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쓴 "진사록" 1권의 한 기사를 보면, 일본군이 북도에 있는 고원이라는 군에 침입했을 때 민간인이 목궁을 쏘아 일본 군인 세 명을 한꺼번에 꿰뚫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사록" 권1 有旨祗受後 馳報賊情及北道賊勢狀 - 국역문은 다음 링크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http://www.nfm.go.kr/downfile/book_mag/350/10-07.pdf)


잠시 먼나라 이야기를 꺼내자면, 영국의 Matthew Strickland 교수의 역작인 "The Great Warbow"에 실린 실험 결과에 의하면 메리 로즈호의 장궁 유물을 토대로 복원한 150파운드 짜리 활은 54그램 남짓한 화살을 330미터 정도 날렸고, 96그램의 화살은 250미터 가량 날린 바 있습니다 6). 메리 로즈 호 영국 장궁의 복원 과정에 동참한 영국 궁장인 Pip Bickerstaffe 씨는 영국의 유명한 궁사(이자 200파운드짜리 장궁을 당긴 것으로 기네스 북에 기록된) Mark Stretton 씨가 100파운드 남짓한 원사궁(flight bow)으로 465그레인(약 30그램)되는 화살을 300미터 가량 날리고, 강한 군궁으로는 800그레인(약 52그램)짜리 화살을 250미터(약 225미터), 1545그레인(약 100그램)되는 화살을 225야드(약 200미터) 날렸다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200야드~250야드 정도의 사거리를 지닌 것으로 추측합니다 7). 영국 장궁 연구가 Richard Galloway 씨에 의하면  160파운드~175파운드짜리 강궁으로 Bodkin 촉달린 화살을 320야드(약 380미터), 원사용 화살을 350야드(약 315미터) 날리 수 있다고 하고, 보다 흔한 100파운드짜리는 보통 250야드(약 225미터)를 날렸습니다 8).

 

물론 이 결과를 조선조의 목궁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같은 목궁이라도 제작과정이나 나무의 재질, 장력, 화살의 구조와 무게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 계열의 목궁 실험 자료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여러 영국 장궁 실험 자료를 언급한 것입니다.

 

목궁이나 죽궁의 실제 위력은 물론이거니와, 목궁, 죽궁의 종류의 문제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얼벼무려서 목궁이네, 죽궁이네 합니다만, 인터넷으로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만기요람의 오군영 군기 목록만 열람하더라고 나무의 재질이나 길이, 제작방식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목궁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야말로(예전에 신재호님께서 지적하신 바 같이) 조선의 군용 활 연구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죽 말한 점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 활의 세계는 짙은 수수께끼의 안개로 덥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조의 군용 각궁과 현대 습사용 국궁의 차이점조차 정확하게 파악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목궁, 죽궁까지 가세하다니......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전통 무기 공부를 하는 초심자인 저조차도 가슴이 턱 막힙니다. 아울러 꾸준히 연구를 해가는 여러 전문가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동안 얕은 지식으로 뭐가 잘났다고 저 자신이 뽐내고 자만했는지가 부끄러워지고, 그 분들에 대한 존경심만 날로 쌓여가는 저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주구장창 잡다한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앞으로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말밖에 생각할 수가 없군요.

 

 사실 글을 쓰면서 많은 부분들이 아쉬웠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제한된 자료를 가지고 긴 글을 쓰는 것도 그러했지만, 여러 전문 서적의 경우 직접 구해 정독할 여건이 안되어 궁여지책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인용문이나 칼럼을 (논문 좀 읽은 티 낸답시고) 주에 적으려니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더군요. 비변사등록 기록 등을 언급할 때 출처 표기를 시간이 없고, 또 귀찮아서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됩니다. 복원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남의 나라 실험 자료를 빌려와 궁색하게 추론한 것에서도 저의 부족함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뚜렷한 주관과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언제쯤 이루어질 지 모르겠군요.

 1): http://anthromuseum.missouri.edu/grayson/koreanarchery/1991-0873-bow.shtm

 2): http://anthromuseum.missouri.edu/grayson/koreanarchery/1998-0112-bow.shtm

 3): http://www.sac.or.kr/eng/bows/12.html , http://www.sac.or.kr/eng/bows/15.html 참조

 4): http://archery.news-paper.co.kr/news_view.html?s=index&no=632

 5): http://www.hornbow.com/mokgoong.html

 6): http://en.wikipedia.org/wiki/English_longbow

 7): http://www.primitivearcher.com/articles/warbow.html

 8): http://www.labelle.org/ArGear_Bows.html


덧글

  • 졸라맨K 2009/02/25 23:35 # 답글

    그나저나...
    저 활들을 복원해도 쏠수 있는 사람이 없는게 문제군요. 100~ 15파운드 이상의 강궁을 계속 쏘다보면 뼈나 관절등에 장애가 오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누가 저런 것을 쏠려고 할까요?
    역시나 근육및 골격 강화장비가 널리 보급되야 하는 것 인지.;;;
  • 시쉐도우 2009/02/26 10:48 #

    최홍만 선수가 궁술을 배우면 됩니...( ");;

    옛날 사람들이 체격은 현재 한국인보다 작아도, 체력은 월등했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140~150파운드 급 활이라...덜덜덜..--;
  • 미스트 2009/02/26 00:43 # 답글

    롱보우의 경우는 그래도 간간히 100+lbs를 다루는 용자들도 있던데... ...으음.
  • 신시겔 2009/02/26 09:37 #

    영국 사람인 마크 스트레튼 씨는 160파운드(!!!)짜리를 당기시더군요.
    최근에는 200파운드나 당겨서 기네스북에 올랐다나......
  • 졸라맨K 2009/02/26 15:36 #

    200파운드 = 90.719816kg 이건뭐 괴물이신듯...
    120근= 158.7파운드 사실상 160파운드 활을 쏘는 만강대라는 일종의 특수부대에서도 괴물이라 불릴 정도군요...
  • 유클리드시아 2009/03/01 08:23 #

    ...가끔 100파운드 쓰시는 분들이 있긴하죠. 50발만 쏘면 어지럽다는군요.;;;;
  • 시쉐도우 2009/02/26 11:12 # 답글

    작년에 있었던 동래성 해자 발굴에서 목궁 유물을 비롯해서 몇장의 활이 회수된 것으로 아는데,

    그 유물들은 거의 확실히 '전투에 쓰인' 물건이니 그 유물들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좀 더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자료가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킁..--;; 용인전투 현장

    같은 곳에서 우연히 웅덩이로 있던 곳이 있어서 아파트 기초 공사하려고 파다가 무더기로 활이

    나온다 거나...하는 사건이 터져주면...)
  • 프랑켄 2009/02/26 12:41 # 답글

    100파운드만 해도 몇십 년씩 수련해야 제대로 쏠 수가 있는데, 이래가지고는 전투무기로서는 영 효율이 좋지 않군요. 일할 시간에 수련해야 하니 경제적 손해도 막심하고,
    그래서 총이 등장하자마자 각광을 받은 이유겠죠. 사정거리 짧고 좀 위험해도 위력 하나는 확실하고 무엇보다 배우기가 활보다 무~~지하게 쉬우니 말이죠.^^
  • 두경승 2009/02/26 14:00 # 삭제 답글

    빌려갑니다,,감사요..
  • 유클리드시아 2009/03/01 08:22 # 답글

    그런데 류성룡은... 뭔가 과장을 많이 시킨 감이 들더라구요..-ㅅ-;;
    저마다 올라온 기록이 다른데,류성룡은 가해 최상의 조건에서 실험(?)을 했는지.. 전부다 사거리니 위력이 참 대단하게 나오더라능.;;
  • 신시겔 2009/03/01 13:43 #

    안녕하세요, 유클리드시아님. 종종 활에 관련된 글을 여러 편 올리신 것을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확실히, 조총 vs 활 논쟁 때마다 항상 튀어나오는 유성룡 징비록의
    "조총 사거리는 수백 보나 되서 활은 상대도 안된다 등등" 구절은 말씀대로 과장이 매우 심해 보입니다만......이 글에서 인용한 부분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적은 장계에 기초한 부분이라 과장이 개입할 여지가 적어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앞서 인용한 실록 두 구절이 목궁을 절하한 듯 싶습니다.
  • 봉래거북 2015/12/24 13:35 # 삭제 답글

    http://www.nfm.go.kr/_Upload/BALGANBOOK/567/10-07.pdf
    ㄴ말씀하신 진사록 국역 부분 링크가 바뀌었네요. 근데 여기에는 번역이 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만...
    185족에 고원 사람들이 왜적 3명중 2명을 쏴 죽였다고만 되어 있네요. 187쪽에도 적병 셋을 쏘아 곧바로 죽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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