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이 판옥선과 대량 화포였다는 사실은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임란 당시 판옥선에 어떤 무기를 얼마나 싣고 다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규장각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는 각종 조선 후기 읍지를 보면 판옥선 한 척 당 대포를 얼마나 시탑재했는 지 등에 대해서는 자료가 그래도 있지만 정작 판옥선이 전장에 가장 활발히 투입된 임란 당시 자료는 거의 없다. 내가 알기로는 이 글에서 소개할 최희량임란첩보서목(崔希亮壬亂捷報書目) 밖에 없다.
사실 이 자료는 내가 처음 알아낸 것은 (당연히, 당연히!)아니다. 나는 이 자료의 존재를 번동아제님께서 쓰신 역사소설 "임진왜란"의 부록(번동아제님께선 소설이 아니라 부록을 쓰셨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후 인용할만한 영인본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memorykorea.go.kr)에서 그 원문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기에 무기 목록만 뽑아서 올려본다.
"萬曆 二十六年 八月 日 興陽縣
(중략)
#이 이후로는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한글로 바꿔 적는다.
흑각궁 10정
상각궁 1정
지자궁(支子弓) 7정
죽궁 1정
장창 12자루
환도 3자루
일본도 1자루
참부(참수형 도끼) 1자루
방울 1개
대쟁(大錚: 일종의 신호기구) 1개
통아(애기살을 쏘는데 필요한 대롱): 8개
현자총통 4자루
승자총통 7자루
현자총통용 화살 2개
대철환 12개
중철환 40개
소철환 3,000개
소소철환 500개"
도합 활이 19정이고 단병기(참부 제외) 16자루, 대포가 4문, 소화기가 7정이다.(정유재란 당시)
인상적인 점 몇가지를 들자면 활 중에서 각궁의 비율이 높은 것, 그리고 대포의 수가 적은 것을 들 수가 있다.
보통 각궁은 준비기간, 재료비 면에서 죽궁, 목궁보다 더 비싸고 만들기도 더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이 사료를 보면 활 19정 중 목궁은 전혀 없고 죽궁은 단 1정 뿐이다. 반면 각궁은 확인되는 것만 11정이고, '지자궁'이 교자궁일 경우(번동아제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하셨던걸로 기억한다.) 각궁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민승기씨는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서 교자궁이 나무로만 만든 활의 일종이라 했으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을 검토해보면 교자궁은 짧은 뿔조각을 사용하고 심줄로 활을 칭칭 동여맨 각궁의 일종이라고 볼 수있다.)
또한 대포의 수도 매우 적을 뿐더러, 위력도 아주 크지 않은 종류인 현자총통이다. 물론 번동아제님께서 워포그넷에서 지적한대로 판옥선이 소속된 경상도 흥양현이 군비를 갖출 여건이 안됬다면 이 사료 하나만 가지고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전라도 수영 판옥선 무장도에 대해 뭘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내가 궁금히 여기는 것은 철환의 종류이다. 대, 중, 소, 소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어떤 것이 대포용이고, 어떤 것이 소화기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기에다가 현자총통으로 조란환을 쏠 확률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할 지 막막해진다. 유물 명문이라도 뒤져봐야 하는가......
#번동아제님의 지적을 듣고 흥양현이 충청도 소속이라고 적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사실 이 자료는 내가 처음 알아낸 것은 (당연히, 당연히!)아니다. 나는 이 자료의 존재를 번동아제님께서 쓰신 역사소설 "임진왜란"의 부록(번동아제님께선 소설이 아니라 부록을 쓰셨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후 인용할만한 영인본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memorykorea.go.kr)에서 그 원문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했기에 무기 목록만 뽑아서 올려본다.
"萬曆 二十六年 八月 日 興陽縣
(중략)
#이 이후로는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한글로 바꿔 적는다.
흑각궁 10정
상각궁 1정
지자궁(支子弓) 7정
죽궁 1정
장창 12자루
환도 3자루
일본도 1자루
참부(참수형 도끼) 1자루
방울 1개
대쟁(大錚: 일종의 신호기구) 1개
통아(애기살을 쏘는데 필요한 대롱): 8개
현자총통 4자루
승자총통 7자루
현자총통용 화살 2개
대철환 12개
중철환 40개
소철환 3,000개
소소철환 500개"
도합 활이 19정이고 단병기(참부 제외) 16자루, 대포가 4문, 소화기가 7정이다.(정유재란 당시)
인상적인 점 몇가지를 들자면 활 중에서 각궁의 비율이 높은 것, 그리고 대포의 수가 적은 것을 들 수가 있다.
보통 각궁은 준비기간, 재료비 면에서 죽궁, 목궁보다 더 비싸고 만들기도 더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이 사료를 보면 활 19정 중 목궁은 전혀 없고 죽궁은 단 1정 뿐이다. 반면 각궁은 확인되는 것만 11정이고, '지자궁'이 교자궁일 경우(번동아제님께서는 이렇게 해석하셨던걸로 기억한다.) 각궁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민승기씨는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서 교자궁이 나무로만 만든 활의 일종이라 했으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을 검토해보면 교자궁은 짧은 뿔조각을 사용하고 심줄로 활을 칭칭 동여맨 각궁의 일종이라고 볼 수있다.)
또한 대포의 수도 매우 적을 뿐더러, 위력도 아주 크지 않은 종류인 현자총통이다. 물론 번동아제님께서 워포그넷에서 지적한대로 판옥선이 소속된 경상도 흥양현이 군비를 갖출 여건이 안됬다면 이 사료 하나만 가지고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전라도 수영 판옥선 무장도에 대해 뭘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내가 궁금히 여기는 것은 철환의 종류이다. 대, 중, 소, 소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어떤 것이 대포용이고, 어떤 것이 소화기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기에다가 현자총통으로 조란환을 쏠 확률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할 지 막막해진다. 유물 명문이라도 뒤져봐야 하는가......
#번동아제님의 지적을 듣고 흥양현이 충청도 소속이라고 적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덧글
-대응관계 설정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1. 연대가 장 근접하는 신기비결 기준
천자총통-대연자, 중연자 가능 (중연자 100발)
지자총통-대연자, 중연자 가능 (중연자 60발)
현자총통-(소연자 30발)
황자총통-(소연자 20발)
조총-(소연자 1발)
대승총-(소연자 3-4발)
차승총-(소연자 2-3발)
소승총-(소연자 1발)
2. 실물 총통 명문 기준
임란 직전 만력 연간의 조선 총통 명문을 보면 승자총통 계열에 중환0발,소환0발이라고 장전 규정을 언급한 사례가 두 건이 있구요.
1583년 승자 소환 10발, 중환 ?발
1583년 승자 중환 8발, ?환 10발
3. 임란 종전 이후 화포식언해의 규정
지자총통-조란환 200발
현자총통-철환 100개
황자총통-철환 40개
승자총통-철환 15개
차승자총통-철환 5개
소승자총통-철환 3개
보시는 바와 같이 전혀 연결이 안됩니다. 일단 실물 명문으로 본다면 구경 21~22mm의 승자총통에 중환이 들어간다고 했으니 중환은 구경 21mm 미만으로 봐야겠구요.
같은 승자총통 계열을 기준으로 화포식언해와 신기비결을 장전 방식을 비교해보면 화포식언해의 철환이 신기비결의 소연자보다 작음을 알 수 있고, 실물 명문상 중환과 소환도 소연자 보다 작음을 알 수 있죠. 소연자의 크기는 조총에 1발씩 넣는 탄환이니 표준형 조총의 구경에 근접한다고 봐야겠죠.
그렇게 본다면 대응관계는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소연자(=표준형 조총 탄환) > (실물 명문상) 중환 > (실물 명문상) 소환 > (화포식언해) 철환
물론 이걸 서목의 자료와 대조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헌데 번동아제님, 제가 다시 한 번 병기보첩을 읽어보니 보첩 앞부분에 "興陽縣新造戰
船什物成冊"라고 하는데, 그럼 그 이후로 나오는 물품 목록이 엄밀히 말해서
전선 탑재로 규정한 물품이 아니라 제조한 물품 목록인가요?
(물론 앞에 전선 1쌍이라고 적혀있어 전선 1쌍에 들어가는 물품을 제조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사료를 제대로 안읽어서 실수만 자꾸 하는 것 같군요.
일반적으로 什物成冊는 조선시대의 단위부대, 혹은 단위함정을 기준으로 한 보유 무기와 장비를 적은 장부를 뜻합니다. 친절하게도 문서에 興陽縣新造戰船什物成冊이라고 되어 있는만큼 이 목록은 새로 건조한 전선(판옥선) 1척의 무기 및 장비 보유량을 뜻합니다.
아니면 정말 현자총통 4문이 '함포급' 화기로 배치된 전부였을지 의문이네요.
최희량임란첩보서목崔希亮壬亂捷報書目>(보물 제660호)만 알고 있었는데
문서에 그런 자세한 것까지 기록되어있다니 정말 귀중한 자료이군요.
문중어르신들의 노력으로 그분의 문집을 비롯해 많은것들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옹 최희량장군님은 저희 시조님이십니다.
문무를 겸하셨으며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시자 모든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수많은 시와 글들을 지으시며 지내시다 92세에 별세하셨습니다.
보기 드물게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장군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희량(무숙공)장군의 유물인 임진왜란첩보서목(국가지정 보물 660호)은 그동안 국립진주박물관(1984년 개관)에 기탁되어 자손들과 관심있는 학자 및 학생들의 접근성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하여 수성최씨 무숙공파 문중의 결정으로 2016년 1월12일 호남권역의 대표 국립나주박물관으로 이관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