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이 쓴 야포는 호준포인가 홍이포인가. 역사의 문을 두드리며

# 이 것이 바로 호준포

# 그리고 이건 홍이포

필자는 절대다수의 주류 조선사 연구자들이 절대로 관심없어 하는 사소한 것들을 매우 좋아한다.
어떤 무기를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몇 미터 거리에서 쏴서 적들이 다가올 때 까지 몇 번을 쐈는가.
활이나 총포를 사용할 때 화살이나 총알, 화약의 사용량은 얼마나 되며, 또 그 것을 보관하는 데 어떤 부속구를 썼는가.
원거리 무기의 최대, 유효 사거리는 얼마나 됬으며 거리에 따른 운동 에너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갑옷은 또 무슨 재질로 어떻게 만들었으며 착용율은 얼마나 되었는가 어쩌구 저쩌구......

한 마디로 전체의 흐름을 읽는 학자의 연구거리라기보다는 중증 전근대 밀덕의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짧게나마 다룰 주제도 그 부류에 속한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거둔 몇몇 승전에 포함되는 광교산 전투이다. 전라병사 김준룡이 약 1만의 병력으로 광교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청군을 연거푸 격파하고 청태종의 매부까지 죽이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으나......며칠 동안 끊임없이 싸우다보니 양식과 탄환, 화살이 거의 떨어져 철수를 하여 초기 목표인 남한산성 구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패배하였다고 해야할까.

필자가 광교산 전투에서 주목하고 싶은 사소한 것은 바로 다음 기록에 있다.

<6일 비와 눈이 섞여서 내려 종일토록 어두웠다. 진시(辰時)에 광교(廣敎) 진중의 정탐병이 말천(末川)에서 와서 적병이 많이 온다고 보고하니, 병사(兵使)는 급히 군사를 정돈하여 변을 대비하게 하였다. 이윽고 적병 5ㆍ60기가 말을 달려 진 밖에 당도하여 형세를 두루 살펴보고 횡행하며 무기를 번득이더니 큰 군사가 뒤를 이어 산과 들판을 뒤덮으며 돌격하여 나와 먼저 전영(前營)의 머리와 좌영(左營)의 꼬리를 침범하였는데, 진 밖에다 방패를 줄지어 세워 놓고 호준포(虎蹲砲)를 연달아 쏘아 대니 시석(矢石)이 비같이 쏟아졌다. 그러나 진중은 동요하지 않는 것 같고 시각이 넘도록 격전을 벌였다. >

고전번역원(www.minchu.or.kr) 역본 속잡록 4 정축년 상 1월 6일

이를 통해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이 호준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전투 양상은 거의 예외없이 기병 돌격에 한정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적극적은 야전포의 운용은 전술적인 면에서 큰 흥미를 유발한다. 포의 종류도 흔히들 알고 있는 홍이포가 아니라 훨씬 가볍고 화력이 약한 호준포라는 점도 그러하다. 다만, 몇가지 기록을 뒤져보다가 속잡록에서 말하는 호준포가 어쩌면 호준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자세하게 기록을 인용하지 않고 대강의 출처만 밝히겠다. 졸립고 귀찮다. 궁금하면 댓글을 달라능.)

우선 연려실기술을 보면 1월 24일 청군이 처음으로 홍이포를 사용하였을 때 "포의 이름은 호준이며 일명 홍이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호준포는 홍이포와는 전혀 다른 화포이건만 이 당시에는 유독 호준포가 곧 홍이포의 별칭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연려실기술에서 광교산 전투를 설명하면서 청군의 호준포 운용(아마 속잡록을 참고한 듯 싶다.)을 기록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호준포와 홍이포는 별개의 화포지만, 이러한 지극히 특수한 문맥을 고려하면 광교산 전투에 썼다는 호준포가 곧 홍이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할 법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난관이 있었다. 연려실기술이 아무리 유용하다 해도 관련 기록을 토대로 편집한 18세기 말의 2차 사료이다. 1차 사료를 통해서 문제되는 구절(홍이포=호준포)을 확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러한 1차 사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료인 병자록, 병자일기, 병자남한일기 등의 기록(모두 국립중도에 있는 판본을 사용한지라 다른 판본은 검토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을 바란다.)을 검토해보면 그 구절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청군이 공성전에 쓰기 시작한 대포가 홍이포라는 말도 없이 그냥 '대포'를 쐈다고만 말하고 있다. 여태까지 찾은 바로는 오로지 다음 구절만이 1차 사료로서 존재한다.

"二十四日。賊以大炮搏城。連日戰於南隔臺外。設七025_497b八柄連放。而砲丸大如鵝卵。能飛十數里。中者糜碎。砲名虎蹲一名紅夷。"
석병집 권5 병자남한일기 일기

석병집의 저자인 이회보는 실제로 남한산성에서 왕을 모시면서 기록을 남겼으니 신빙성을 의문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 외에 석지형이 편찬한 남한일기, 그리고 정축년 2월자 기사를 보면 둘 다 강화도에서 청군이 홍이포가 아니라 호준포를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속잡록에서는 아예 호준포가 강화도를 수비하는 조선군을 무너뜨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논조로 기록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겨우 호준포로 판옥선을 격퇴한다는 점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이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앞서 필자가 제기한 주장, 곧 최소한 병자호란 당시에는 호준포와 홍이포가 같은 대포(홍이포)를 가리키는 이칭이었다는 설에 나름대로 타당성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 딴지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만약에 속잡록을 기록한 이는 이회보처럼 호준포가 곧 홍이포의 이칭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짜 호준포를 생각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다 홍이포=호준포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유독 속잡록을 기록할 때만큼은 호준포를 썼다면? 스스로 악마의 대변인 노릇을 하기 위해 조금 억지를 부린 바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기에 매우 찝찝하다.

어느 쪽을 믿어야할까. 아니, 그 이전에 이 문제가 이렇게 따로 글을 쓸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던가? 갑자기 글을 쓰고 나니 힘이 빠진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7/15 00:15 # 답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청군의 포 운영에 있어서 호준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호준포보다.....구경이나 포신이 강화된 유형은 아니었던 것일까요?

    사실 조선의 지식인들이 홍이포와 호준포의 차이를 몰랐다고 생각하기는 힘드리라고 봅니다. 특히 척계광 등의 병서에서 호준포에 대해서 다뤄주고 있는 이상은 더욱더 말이죠.ㄷㄷ 다만 신시겔님께서 지적해주신대로 '일반적인 호준포'로는 그런 위력과 화력이 나올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타협적 가정을 한번 올려봅니다. (도주)
  • 윤민혁 2010/07/15 00:55 # 답글

    호준포는 명나라 얘기이긴 해도 기병대의 주력 화포로 쓰였으므로,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 기병이 호준포를 운용한 것 자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후대 들어서 "그 유명한 홍이포"와 "호준포"를 동일시한 건 역사기록 해석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아닐까 싶네요.


    영 엉뚱한 얘기긴 하지만, 다산시문집에서 이런 대목과 이런 번역이 있군요.

    네덜란드 호준포가 유별나게 매섭다면 / 紅夷虎蹲特雄悍
    프랑스의 백자총은 더한층 성능 좋네 / 佛郞百子尤慘刻


    저기에서의 홍이가 네덜란드가 아니라 홍이포를 가리키는 표현일 수도 있어서 뭔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랑을 프랑스가 아니라 불랑기로 해석하면 저 홍이도 홍이포로 볼 수 있겠다 싶은데... 일부러 저렇게 묶은 이유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죠.
  • 신시겔 2010/07/15 13:56 #

    다산문집의 시는 아무래도 역자 분께서 화포명을 국가명으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네덜란드에서 호준포를 쓰고 프랑스에서 백자총을 썼었겠습니까.(-ㅁ-) 다만 그렇다하더라도 문제를 푸는데 별 도움은 안되는 것 같습니다.

    글에서도 썼지만, 문제가 되는 구절인 "砲名虎蹲。一名紅夷"이 후대의 2차 사료가 아니라 1차 사료인지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사료를 확인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습니다만, 실력이 부족해서 깊이 들어가기가 저로서는 힘듭니다. 다만, 만문노당을 보면 화기 부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소총(조총), 홍이포, 대장군포 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화포의 여부는 불확실하죠.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된 이유가 예전에 디펜X코X아에 조선 군사사를 유럽의 경우와 비교하면서 비판한 장문의 글(아주 오래 전에 이 글을 쓰신 분과 윤민혁님께서 크게 논쟁하신 걸로 기억합니다.)을 제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입니다. 야포 문제를 언급하면서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취한 고지+야전축성+조총수 위주의 방어적인 전술이 야포를 동원한다면 무력하게 무너질 것이다......라는 것이 주요 논지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야포를 동원했음에도 야전축성물을 쉽게 돌파하지 못한 사례가 제법 있길래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툭하면 야전축성했던 16~17세기 유럽까지 눈을 돌릴 필요도 없이, 당장에 1690년대 중가르부와 청군이 맞붙은 울란 부통 전투가 있지요.

    당시 중가르부는 화포 전력이 크게 뒤쳐지고 숲에서 낙타 등을 둘러 야전축성을 하고 청군은 야포로 수일 동안 지속적인 사격을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무력으로 중가르부의 야전 축성물을 허무는데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제가 예시를 찾은 것이 바로 여기서 언급한 광교산 전투의 사례죠. 그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글을 쓰게 되었고...
  • 윤민혁 2010/07/15 19:31 #

    번역 쪽은 저도 같은 생각인데, 어떤 의미로는 홍이와 호준을 같이 언급한 게 아무래도 두 포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는 거니까요. 일단 남아 있는 물건으로 봐서는 아예 개념이 다른 물건인데 말입니다. 뭐 그런 해석이 가능하자면 불랑기와 백자총을 같이 언급한 저의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만.

    어쨌든 제 생각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전제로 깔고, 저 홍이포라는 게 실은 우리가 아는 호준포를 가리키는 거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기병이 운용하는 화포라면 사실 당대의 기동력으로 볼 때 호준포 이상의 화포를 운용하기 어렵지 않은가라는 의문도 있고요.
  • 신시겔 2010/07/15 20:11 #

    딱히 무슨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시를 쓰다보니까 그냥 붙여놓은 건 아닐까요.(...)
  • lhj930705 2011/06/25 00:27 # 삭제 답글

    홍이포는 무거워서 야포로써의 사용에 적합하지 못하지 않나요?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군대가 서양식 포가를 사용했다는건 못 들어본것 같은데요.
  • costzero 2012/03/26 20:46 # 답글

    광교산 전투 안타깝군요.
    스탈린그라드의 실패를 보는 듯한.
    국사책에는 이런 자료도 없지.
    전술적으로 손실은 아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전투군요.
    안타깝습니다.

    선조처럼 빨리 움직였으면 제주도로 도망가서 또 몇년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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