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눈에 비친 청나라 각궁 역사의 문을 두드리며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침략자들을 상대로 hit and run 전술을 구사하여 페르시아인들을 맥빠지게

 했던 스키타이인들부터 18세기 러시아와 크림 반도에서 활약한 칼묵(Kalmuck: 러시아로 이주한

 오이랏)과 타타르까지, 수없이 많은 갈래의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다니며 각궁을 주무기로 사용하였습니다.

 17세기 초 누르하치의 깃발 아래에 통합하여 명과 조선을 압박하고 1636년에는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어

 조선을 침공했던 만주인들 또한 말 위에서 각궁을 사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용 용도(보사용, 기사용, 습사용, 군용 등)에 따라 길이가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이 당시 만주인들이 사용한

 각궁은 그 길이가 1.6미터에서 1.8미터 가량이나 되는 매우 길고 묵직한 각궁으로서, 현대 몽골 각궁보다 더 큰 편입니다.

 각궁 계열에서는 가장 거대하다고 해도 무난한 정도이지요.

 

 

사진 1. 청대 군용/사냥용 각궁. (길이: 175센티미터)

(출처: http://anthromuseum.missouri.edu/grayson/chinaarchery/1998-0162bow.shtm)

 

 



사진 2. 1760년 경 청나라 근위병의 초상화. 크고 두터운 활고자와 활의 크기가 인상적이다.
(출처: http://www.metmuseum.org/special/when_the_manchus_ruled/4.L.htm)

 

 

 이렇게 활채가 길고 질량도 많이 나가는 활은 활의 높은 질량을 가속시키는데 활의 힘이 질량이 낮은 활보다

 많이 소모되어 효율(실제로 화살에 실린 에너지/활을 당겼을 때 저장된 에너지)이 상대적으로 낮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화살을 날릴 때 불리한 편입니다. 터키나 한국의 각궁은 청나라 각궁에 비해 활채의 길이도 무척 짧고(터키: 1.1미터~1.2미터 가량, 한국: 1.2미터~1.3미터 가량) 질량도 낮기 때문에 보다 가벼운 화살을 날릴 때에는 유리한 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활채가 길면 그만큼 활을 더 많이 당겨 더 많은 운동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무거운 화살을 날릴 때에는 질량이 낮고 활채가 짧은 활보다 유리합니다. 터키의 각궁은 보통 활을 당기는 길이(draw length: 활을 만작했을 때 화살이 걸린 지점부터 화살의 오늬까지의 최단거리)가 70센티미터, 한국 각궁은 80센티미터~85센티미터인 반면, 청대 각궁은 90센티미터가 넘고, 종종 1미터에 달합니다. 활을 당길 때 저장된 운동 에너지의 양은 후크의 법칙에 의거하여 당긴 길이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당기는 길이만 따지면 터키 각궁, 한국 각궁, 청나라 각궁의 운동 에너지의 비율은 49:(64~72.25):(81~100)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이지요. 이 때문에 무거운 화살을 날릴 때 청대 각궁처럼 길고, 그래서 더 많이 당겨 운동 에너지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활은 상대적으로 짧은 활보다 더 높은 효율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건국 초부터 말타며 활쏘는 여진인들과 끊임없이 다투고 17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병자호란 때 패배의 쓴 맛을 보며, 또 한편으로는 18세기 청의 선진 문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겠다는 의지로  청을 기행하기도 했던 조선인들은 동기가 어떻든 간에

청나라의 주요 무기 중 하나였던 활에 대해 여러 차례 기록을 남겼습니다.

 

 

 

"활은 매우 큰데, 마치 우리 나라의 육량궁(六兩弓)처럼 생겼다. 검은 뿔로써 활 손잡이[弝]에서 활고자[弰]까지 장식을 하고, 자작나무(樺) 껍질로서 등을 샀는데, 뿔과 자작나무 껍질과의 사이에는 옻칠을 단단히 해 두어서 비록 덥거나 비가 와도 아교가 쉽게 녹아 떨어지지 않는다.

관문(關門) 동쪽에는 〈활에 쓰는〉 가죽줄을 많이 만든다. 대체로 활의 휘어드는 성질이 우리 것만 못해서 화살이 멀리 나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억세고 뻣뻣해서 비바람을 타지 않으므로 적과 싸울 때나 사냥할 때 좋으니, 이런 점은 또 우리 나라의 활이 미치지 못한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담헌서 외집 10권 燕記 兵器-

 

 

 

"활의 제도는 매우 커서 우리나라의 활에 비하면 5분의 2가 더 크다. 모두 흑각(黑角)을 붙이고 활줌[弝]에서 활꽂이[弰]까지를 자작나무 껍질로 그 등을 쌌다. 자작나무 껍질과 흑각의 어름에는 칠을 칠해서 견고하게 하였으니, 아무리 무더운 여름철의 빗속이라도 근각(筋角)이 풀리지 않는다.
관외(關外)에서는 대부분 가죽 시위를 사용한다. 쏘아서 멀리 나가게 하는 데는 비록 우리나라의 활만 못하나, 그 굳세고 튼튼함은 풍우(風雨)에 끄떡없어 전쟁에나 사냥에 쓰기 알맞으니, 곧 우리나라 활의 미치지 못할 바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연원직지 제 6권 유관별록 器用-

 

 

"활은 검은 물소 뿔로 삭(槊)을 만들고 자작나무 껍질로 쌌는데 길이는 우리나라 활보다 1장(丈) 반은 길지만 좀 약한 편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영고탑(寧古塔) 지방에서 채취(採取)하고 궁태(弓胎)는 창평(昌平)ㆍ밀운(密雲) 두 곳에서 벌채하며 화살은 나무로 만드는데 황새 깃을 붙였다.

모두 활촉이 넓적하고 깃이 큰데, 깃은 반드시 비스듬히 붙였으니, 이는 다 호인의 제도다.

긴 활에 큰 살을 다 당기어 말 위에서 달리며 쏘는 것이 비록 그들이 잘하는 것이기는 하나,

활이 약하고 화살이 둔하며 쏘는 법이 심히 엉성하여 멀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과규(科規)에 표적을 세우는데 말타고 쏘는 데는 30보에 불과하고

걸으며 쏘는 데는 50보에 불과하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연행록선집" 연행기사 聞見雜記 雜記 문견잡기 상-

 

 

 

"우리나라에서 육진(六鎭) 사람들과 무역할 때 구입한 각궁(角弓)은 물 속에 빠진 지 20일이 되어야 비로소 해체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활은 짧고 저들의 활은 길어야 하기 때문에 뿔을 사용하여 그 제도를 개조한 모양인데, 그 제작의 견고하고 치밀함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활은 일기가 흐리기만 하면 뿔과 아교가 모두 해체되는 실정이니, 이를 장차 어디에 쓸 것인가. 저들은 활을 만들 때 활 몸ㆍ활줄과 화살대ㆍ깃 등의 재료를 채취하는 범위가 매우 넓으니, 모두 본받아야 할 일이다.

건륭(乾隆 청 고종(淸高宗)의 연호) 33년(영조 44, 1768)에 명을 받들어 보사(步射 사격 시험에 달음질치면서 쏘는 것)로 과녁을 쏠 때 사정거리를 80보(步)로 하여 너무 멀었으므로 아무리 잘 쏘는 자도 실수가 많았고 그 뒤에는 50보로 개정하여 두 대의 화살을 맞히면 합격으로 인정하였다. 대저 그 거리가 가까우면 화살의 힘이 집중되어 쏘는 대로 맞힐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먼 거리의 사격을 숭상하고 있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니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청장관전서 제 60권 양엽기 7, 궁전 만드는 제도-

 

 

 

"중국의 활은 너무 투박하고 커서 우스꽝스럽다. 사정거리도 70보~80보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활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서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변형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은 활을 잘 쏘아서 200보까지 맞추나 조금이라도 활을 불에 잘 굽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비가 올 때에는 전혀 사용할 수가 없다. 적군이 갠 날을 가려서 쳐들어 올 리는 없지 않은가?"

 

-북학의 내편, 활.(안대회 옮김, 도서출판 돌베개, 2003)-

 

 

  위의 기록들은 보통 18세기 말 청을 방문한 실학자 계열의 지식인들이 청의 각궁을 관찰한 후 남긴 기록입니다.

 기록을 검토해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청나라 각궁이 조선 각궁에 비해 무척 크고 두터우며, 사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홍대용이나 이덕무는 보사 시험에서 거자(수험생)와 과녁 사이의

 거리가 30보 정도밖에 안되는 점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기록들은 또한 청나라의 각궁에 조선 각궁에 비해 매우 튼튼하고 습기에도 아랑곳 않고 쏠 수 있는

 우수한 방수력 또한 지적하면서 습기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조선 각궁과 대조하여 호인의 문물이라도 마땅히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는 실학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실학자들은 최소한 청나라의 활이

 각궁이라는 것은 인정한 것에 반해, 박제가는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청나라의 활은 아예 목궁이라고 단정지으며

 열등한 사거리와 우수한 방수력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청나라 각궁의 뛰어난 방수력을 강조하느라고

 일부러 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이보다 백 수십 년은 앞서서 여진이 막 흥기하려던 17세기 초에 조선인들이 남긴 만주인의 활에 대한 기록은

18세기 말 실학자들의 기록과는 또다른 흥미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비밀 비망기(秘密備忘記)로 이일(李鎰)에게 하문하기를,

“첫째, 노토(老土)의 소굴이 험조(險阻)하다고 하는데, 알 수 없거니와 성을 쌓았는가, 산세를 의지하였는가? 성을 쌓았다면 석성(石城)을 쌓았는가, 토성(土成)을 쌓았는가, 아니면 나무로 목책을 만들었는가? 호인(胡人)의 병기는 궁시(弓失)에 불과할 뿐인데 일찍이 그 궁시를 보건대 활은 조잡하고 화살은 강하지 못했는데 그에 비교하면 우리 나라 궁시가 10배나 나았다. 그들은 도대체 궁시 외에도 다른 기술을 갖고 있는가? "

 

-sillok.history.go.kr, 선조실록 권115 32년 7월 27일 갑술-

 

 

"그러나 지금 이 적병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아서 다른 기예(技藝)는 없고 단지 궁시(弓矢)와 전마(戰馬)만이 있을 뿐인데, 그 궁시는 사거리(射距離)가 우리 군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다만 그들의 전마는 힘이 매우 좋아 치달리며 진격하기에 적격이라서, 순식간에 아군(我軍) 속으로 돌입(突入)하기 때문에 아군이 저절로 그 위세에 눌려서 무너지곤 한다.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와 전투를 벌일 적에 접전할 때마다 꼭 패하곤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포저집 제 23권 잡저, '장사에게 유시한 글'-

 

 

"이른바 활의 제도를 간편하게 고치는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삼가 전투에 많이 참가해서 노련한 자들의 말을 들어 보건대, 우리나라의 각궁(角弓)이 실제로는 오랑캐의 목궁(木弓)보다 못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각궁은 천하에 이름난 활로서, 역사(力士)가 그 강한 활을 쥐고 쏠 경우에는 갑옷을 뚫는 힘이나 멀리 날아가는 면에서 오랑캐의 활이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활줄을 오랜 시일 동안 잡아당기다 보면 강한 것이 거꾸로 약하게 되고, 또 안개나 이슬에 젖게 되면 힘줄과 아교가 풀어지고 마니, 이것이 각궁의 단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사들이 각궁을 지니고 있는 것도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각관(各官)의 무기고에 보관 중인 것도 모두 외면을 장식해서 숫자만 채워놓고 있는 실정이며, 군졸 자신이 갖춘 것을 보면 또 오래 사용해서 결함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니 실제로는 모두 쓸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오랑캐의 목궁은 오랜 기간 활줄을 잡아당겨도 약해지지 않고 비에 젖어도 상하지 않으며,

멀리까지 날아가는 것은 각궁보다 못하지만 사정 거리 안에서는 쏘기만 하면 깨뜨릴 듯이 힘있게 날아가서 적중하곤 합니다.

그리고 각궁은 사정거리가 멀기 때문에 먼 곳에서부터 사격하다 보니 화살이 대부분 적중되지 않는 반면에, 목궁은 멀리까지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사정거리를 헤아려서 사격하다 보니 쏘기만 하면 많이 적중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활이 천하에 이름이 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활용하는 면에서는 이처럼 오랑캐의 활보다도 오히려 못한 실정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어떤 무기를 쓰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활의 경우는 이처럼 이름과 실제가 부합되지 않으니, 이 일은 변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우리나라의 산척(山尺)들은 모두 목궁으로 짐승을 잡는다고 하며, 임진년에 각처의 의병(義兵)들도 많이 목궁을 사용해서 왜적을 죽였다고 하는데, 신 역시 아동 시절에 목궁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온전한 나뭇가지를 통째로 베어서 양 끝을 잘라내되 길이는 각궁의 약 두 배 정도로 하고, 삼이나 모시로 활줄을 만들되 거기에다 힘줄이나 옷칠을 더 입히면 더욱 질기고 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면 마련하기도 매우 용이할 뿐만 아니라, 활줄을 오래 사용할 수도 있고 습기에도 견뎌내면서 적병을 죽일 수가 있으니, 오랑캐의 활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의 생각으로는 이 활을 많이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사들이 지니고 있는 강궁(强弓)까지 바꾸게 해서는 물론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인들의 활 중에서 쓸 수 없는 것들을 이 활로 바꾸게 해서 군중(軍中)에 각궁과 목궁이 함께 섞여 있게 한다면, 강한 활인 각궁을 가지고 우리나라 본래의 활 솜씨를 한껏 발휘할 수 있을 뿐더러 목궁을 가지고 오랑캐의 기능에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니, 실로 편리하고도 유익하게 될 것입니다.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고전국역총서, 포저집 제 11권 箚,

'구언(求言)한 분부에 따라 변방의 대비를 견고히 하는 일과

잘못된 정사를 개혁하는 일에 대해서 조목별로 진달한 차자'-

 

 

 상대적으로 여진의 활이 조선에 활에 비해서 성능이 뒤떨어지고 습기에 강하다는 평은 위 기록에서도 잘 보이지만

 포저 조익 선생의 포저집에 적힌 대목은 상당히 의외입니다.

 실전에서의 사거리가 조선의 활의 절반도 안된다는 증언은 단순히 상대적으로 사거리가 짧았다는 18세기 말 조선인들의

 기록과는 다른 차원의 충격을 줄 뿐더러, 훗날 박제가와 마찬가지로 만주인의 활을 목궁이라고 단정지으며 그 짧은 사거리와

 우수한 방수력을 강조하는 것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포저 조익 선생은 단순히 호인의 활은 목궁이라 방수력이 우수하다라고 평을 내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매우 진지하게, 각궁이 주력 활로 쓰이는 상황을 타개하고 목궁을 많이 제작하여 만주인을 제압하는데 일조하자는

 제안을 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목궁의 장점에 대해 기타 조선 사서(대표적으로 실록)에서는 습기에 강하다는 정도에서 그치는데 반해,

 포저집에서는 목궁이 비록 사거리는 각궁보다 짧으나 더 가까운 거리에서 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있고,

 또 근거리에서의 위력도 괜찮다고 기록하여 다른 관점에서 목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점에서 관심을 끕니다.

 한편 포저 조익 선생이 살았을 당시의 만주인의 활이 각궁이었냐 목궁이었냐하는 문제를 차치해두고서라도, 포저 조익

 선생이 목궁을 널리 쓸 것을 제시하며 목궁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활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기 그지 없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우리나라의 산척(山尺)들은 모두 목궁으로 짐승을 잡는다고 하며, 임진년에 각처의 의병(義兵)들도 많이 목궁을 사용해서 왜적을 죽였다고 하는데, 신 역시 아동 시절에 목궁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온전한 나뭇가지를 통째로 베어서 양 끝을 잘라내되 길이는 각궁의 약 두 배 정도로 하고, 삼이나 모시로 활줄을 만들되 거기에다 힘줄이나 옷칠을 더 입히면 더욱 질기고 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면 마련하기도 매우 용이할 뿐만 아니라, 활줄을 오래 사용할 수도 있고 습기에도 견뎌내면서 적병을 죽일 수가 있으니, 오랑캐의 활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목궁의 길이가 각궁의 두 배 정도나 될 정도고 길고, 힘줄을 붙이거나 옻칠을 한다고 한 것에서

우리는 이 기록에서 제시한 목궁의 제원과 현존하는 목궁 유물들의 제원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현존하는 목궁 유물들은 1.2미터 가량인 각궁에 비하여 1.6미터에 이르를 정도로 길고 두터운 것들이

다수 있으며, 또한 대개 심줄을 입힌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의 군용 활, 특히 목궁에 대해 상호비교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사소하게나마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기병대가 전통적인 장기인 궁시를 주무기로 사용하기보다는

"비바람과도 같이" 빠르게 기병 돌격을 감행하여 상대적으로 기병의 수가 적고 전통적으로 살수 전력이 부실한

조선군을 여러 차례 상대하였는지에 대해도 일말의 단서를 비추는 점에서 역시 흥미롭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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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 want...a shrubbery!!! : 조선조 군용 목궁에 대한 짧은 글 2009-02-25 19:05:55 #

    ... 인류학 박물관의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3). 정묘, 병자호란을 겪은 문신 조익은 자신이 쓴 문집에 남긴 목궁 제원도 이러한 현존 유물들과 비견할 만합니다.(http://sinsigel.egloos.com/871512 참조)길이가 약 2.5미터이고 너비가 8센티미터인 육군박물관 소장의 예궁이 박극환 궁장이 복원했을 때 세기가 270파운드 4)였고, 같은 ... more

덧글

  • 개량궁 2008/12/02 10:04 # 삭제 답글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
    이 글 퍼가도 되는지요?
  • 신시겔 2008/12/05 12:16 #

    글을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퍼가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늦게 답변해드려 죄송합니다.
  • 마츄픽 2009/01/05 20:52 # 삭제 답글

    퍼가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 데빌쿠우 2009/10/18 09:23 # 삭제 답글

    흐음... 그렇군요.. 유목민카테고리는 전부 기마궁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면 사르후전투에서도 유목민특유의 궁기병 히트 앤 런이 아닌 닥돌로 승리한

    거였죠.. 쌍령전투에서도 그랳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 신시겔 2009/10/21 11:08 #

    개개인의 기사(기마궁술) 능력이야 당연히 유목민을 따라올 수 없죠.
    하지만 유목민 궁기병보다 월등한 원거리 전력을 갖추고 있는 상대에게는 전형적인 유목민의 궁시 공격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해야할까요.
  • 공손연 2013/12/17 13:17 # 삭제

    만주족은 유목민이 아니라 반농반목의 수렵민족이라고 봐야 하죠.

    돼지고기와 콩으로 만든 청국장을 즐기는 아마 고구려와 비슷한 포지션일겁니다.
  • nsm9574 2013/02/18 14:15 # 삭제 답글

    그런데 국궁과 터키각궁을 전체적인 평균으로 장력,길이등을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 나그네 2013/08/12 23:47 # 삭제 답글

    우리나라 현재 각궁의 제조에도 화피단장을 합니다. 이때 화피라는 것은 자작나무 껍질을 말합니다. 저 기록이 맞다면 청의 각궁의 제도를 따라한 이후부터 우리 각궁도 화피단장을 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크기 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각궁은 만드는 재료와 방법이 거의 같습니다... 다른 것은 크기와 세세한 부위입니다. 탄력성이 있어서는 우리나라 각궁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만 멀리쏘기로는 터기활이 역사상 기록으로 800미터 이상을 날아간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치면 천보... 터키활도 각궁인데 우리 각궁과 크기는 유사하지만 활몸체의 재료가 대나무가 아니라 나무입니다. 그래서 좀 뻣뻣....
  • 나그네2 2013/08/12 23:57 # 삭제 답글

    궁장의 말씀으로는 떡갈나무로 만든 목궁을 경궁이라 한답니다... 세계의 활을 볼 때 목궁에 힘줄을 붙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판의 목재로 힘줄과 뿔을 대신해서 쓰거나 잉글리쉬 보우처럼 통째로 메이플 나무를 깎아서 만듭니다. 위의 자료를 보니 우리도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니 힘줄을 안 붙이고 잉글리쉬 롱보우처럼 단순궁의 직궁(부린활)이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네요... 기사로 쏠 일은 없었으니 장궁이고... / 누가 한번 만들어보셔서 시험해보셨으면 좋겠는데... ㅎㅎ
  • 2014/10/31 01: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aa 2017/04/28 17:41 # 삭제 답글

    17세기면 활이 아니라 화약 병기의 발전으로 총을 연구해야했어야죠 청나라 팔기군도 결국 활만 고집하다가 아편전쟁으로 총의 위력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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